무산일기 웰컴 투 시네마

단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사람들이 좋은 영화를 보고나서 하는 버릇 같은 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무산일기>의 감독이자 주연으로 직접 연기도 한 박정범 감독에게 많은 이들이 ‘제2의 이창동이다’라는 말을 한다. 모 사이트 기사는 올해 개봉한 <무산일기>를 포함한 3개의 독립영화 <혜화,동><파수꾼>을 놓치면 제2의 이창동, 제2의 허진호, 제2의 봉준호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실제로 <무산일기>의 박정범은 이창동 감독의 <시>의 조감독으로 있기도 했고, 그 전부터 이창동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며 존경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무산일기>를 보며 그를 제2의 이창동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혜화,동>의 감독 민용근을 제2의 허진호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어떤 영화의 감독이 또 다른 감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무의식중에 둘의 영화를 연결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의 모든 영화들이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사람들은 마치 두 감독의 영화를 모두 간파하고 있다는 듯 기어코 그들을 후계자, 제2의 누구 하며 연결을 짓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리고 일단 기본적으로 <무산일기>의 박정범이 프리단계부터 후반작업까지 이창동의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 자체는 이창동 영화와 아예 길을 달리 한다.(무엇보다 박정범의 <무산일기>는 굉장히 개인적인 의도에서 시작된 영화다) 민용근과 허진호도 그저 수많은 감독들이 작은 연결고리 한 개씩 갖고 있는 그 정도의 관계 밖에 되진 않는다고 본다. 감독 스스로가 좋아할지는 몰라도 나라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2의 누구라며 불리지도 못하는 수준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위에 나열한 세 영화의 감독들은 충분히 제1의 박정범, 민용근, 윤성현 이라고 불러줄 수는 있는 감독들이다. 영향을 받은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그들에게 굳이 선배들의 이름을 붙여 그들을 같은 계보에 두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론 유감스럽다. 좋은 뜻으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나쁜 뜻으로는 그들을 한 곳에 묶어두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저 제1의 박정범, 민용근, 윤성현인 것이다.


사설이 길었다. <무산일기>는 탈북자 전승철의 일기같은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인 전승철은 실제로 감독의 친구의 이름이‘었’다. 었다라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탈북자였던 박정범 감독의 친구 전승철씨는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감독은 그가 암으로 떠날 때 그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개인적인 의도에서 시작된 영화다. 본인이 봐왔던 친구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연기까지 본인이 직접 했다. <무산일기>는 박정범에게 반듯이 만들어야 하는 영화였던 것이다. 반듯이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야 가슴 속의 응어리가 사라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감독은 GV에서 모든 탈북자가 영화 속의 탈북자들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무산일기>에서 볼 수 있는 탈북자의 모습은 박정범 감독이 봤던 그들의 모습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결국 그것은 모든 탈북자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속 그탈북자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실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모습 역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속 승철이 사랑하는 수경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며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만 아버지가 아프셔서 노래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회 사람들에게 숨긴다. 승철에게 그녀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지만, 그녀는 인간이다. 자신을 깨끗한 이미지로만 포장하려고 하며, 자신과 같이 노래방에서 일하는 승철에게 교회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노래방에서 일하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며 부탁한다. 게다가 아는 척까지 하지 말라며. 승철이 노래방 도우미들과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왜 ‘노래방 도우미’들과 찬송가를 부르냐며 승철을 꾸짖는다. 수경에게 ‘노래방 도우미’들은 찬송가를 같이 부르면 안 되는 대상인 것이다. 같은 예로 그녀는 노래방 일을 하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말한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승철을 불편해 하다 사소한 실수로 그에게 노래방에 그만 나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며 껍질만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녀를 야속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녀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탈북자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평범한 사람과 ‘다른’ 껍질로 그들을 평가하고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한다. 결국 평범하지 않은 그들은 세상을 겉돌기도 하고 서로를 감싸는 것이다. 승철은 은근슬쩍 노래방 도우미의 속살을 더듬는 손님과 몸싸움을 벌이고, 그녀들과 함께 찬송가를 부른다. 평범한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한 승철은 강아지를 키우며 그에게 사랑을 배푼다. 승철에게 이기적이다, 너밖에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 정말 이기적이고 당신밖에 모르는 사람은 누군가.


<무산일기>는 단순히 탈북자들만의 일기가 아니라, 극빈층같은 사회의 포함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의 일기로 읽혀도 무방하다. 교회는 그들이 껍질을 벗고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책을 보며 같은 노래를 부르는 장소다. 교회에서 승철은 자신의 과거를 밝히고 미약하지만 사회로 한걸음 나아간다. 수경은 그제서야 승철에게 선의를 베풀기 시작한다. 인간들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탈북자들은 자신들이 탈북자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비밀일 것이다. 그 비밀은 밝혀져야 하는 비밀이고, 그 비밀을 밝힘으로 인해 사회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러나 수경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지 않는가. 먼저 자신을 밝히는 것은 그들이며, 그로인해 결국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 것도 그들이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다가올 것을 기다린다. 그들이 한발자국 다가오면 그제서야 '뒤늦게' 두발자국 다가간다. 결국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승철이고, 뒤늦게 마음을 여는 것은 수경인 것처럼. 마음을 여는 것은 수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교회의 성가대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승철의 모습은 애처롭고 한편으론 비극적이다. 


생각보다 <무산일기>는 투박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종종 배치되어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다큐같은 촬영은 현실의 감각을 그대로 영화에 담아낸다. 승철을 연기한 박정범 감독은 실제로 맞기도 하고 한 씬을 24번 찍기도 하면서 리얼함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카메라는 승철의 뒷모습을 유난히 많이 보여준다. 물론 카메라를 감독이 직접 촬영하지는 않았겠지만(감독은 카메라가 찍고 있는 승철을 연기하고 있기에) 그 뒷모습들은 어떤 앞모습보다 진솔하다. 자신이 과거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하는 승철의 뒷모습은 미세한 떨림과 함께 큰 울림을 준다. 어떤 인물의 일상을 바라보면 그들을 알 수 있다. 다르덴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며 언제나 말했던 것이 있다. 바라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인물들의 뒷모습을 찍고,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하는 것이 모두 <무산일기>처럼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그저 다르덴 영화를 따라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영화다. 그 영화 역시 20대 청춘들의 비루한 일상을 세세하게 보여주지만, <무산일기>가 주는 울림을 주지 못한다. 바라보는 것에 담겨진 진심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나의~>의 감독이 얼만큼의 진심을 영화에 담았는지 내가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감독에게 실례일 것이지만, <무산일기>에서 느껴지는 진심만은 말할 수 있다. <무산일기>는 그의 반성문 같은 영화이며, 그 반성문에는 사랑했던 친구의 모습을 영화로 남기려는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 애절함은 이 영화를 우리의 반성문으로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승철이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나 다름이 없는 강아지 백구의 시체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1분 전만해도 자신을 향해 꼬리를 흔들던 백구는 차가운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다. 영화 속 승철이자, 감독 박정범은 백구를 바라본다. 나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감독의 친구 전승철을 떠올린다. 백구를 한참을 바라보던 승철은 다시 노래방으로 들어가고 영화는 끝난다. 승철은 백구를 잃고 행복할 것인가. 전승철을 잃고 그에 대한 반성문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 박정범은 반성을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을까. 후련함과 아련함과 함께. 이 부분은 관객인 우리가 개인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백구를 바라보는 승철을 연기하는 박정범이 백구를 바라보며 자신의 친구 승철을 기억했을 거라는 내 생각은 이 영화를 너무나도 가슴 아픈 영화로 만든다. 결국은 우정인 것이다. <무산일기>는 그 영화 자체가 우정을 말하는 영화인 것이다. 감독으로써는 친구에게 미안했다는 한마디를, 승철로써는 친구가 되어달라는 한마디를. 그 말을 하지못하는, 그리고 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감독은 영화로 말을 해야하며, 그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해야했던 말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했다. 결국 제2의 이창동이라는 말을 하기에 너무 큰 그릇인 그를 제 1의 박정범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이유를 확인할려면, 그의 우정을 느끼려면 우린 지금 극장으로 발을 돌려야 한다. 지금 놓치면 제1의 박정범을 놓치게 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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