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시간 웰컴 투 시네마

 

<127시간>의 주인공 애런은 계곡 사이를 헤치며 레저를 즐기다가 불운하게 바위틈에 팔이 끼고 만다. 많이들 알다시피 이것은 실화다. 애런은 끝내 자신은 이 돌에 끼이기 위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즉 이것이 하나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빈민가의 꼬마가 수억원의 상금이 달려있는 퀴즈쇼에서 1등을 하듯, <트레인 스포팅>의 마약에 쩔어 있던 젊은 청년이 평범한 삶을 꿈꾸게 되듯,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어 또 다른 인생을 개척하기로 다짐한다. 그 새로운 인생에선 지금까지 무관심 했던 지인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바위 틈 사이에 팔이 낀 남자가 자신의 팔을 절단하고 탈출에 성공했다'라는 기사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영화로 만들기엔 너무 간소한 줄거리가 아닐까란 걱정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우려와 달리 <127시간>은 그의 최고작이라 하고 싶을 정도로 나를 사로잡았다. 이 간소한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운명을 뛰어넘는 다는 휴먼 스토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방식에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잘 짜여진 이야기 위에 대니 보일의 화려한 테크닉이 씌여진 경우라면, <127시간>은 오직 그의 음향과 편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연출력을 뽐내는 영화로 느껴진다. 서사가 부족했기에, 보일은 애런의 상상에 깃대여 영화를 진행시킨다. 우리가 위기에 순간에 쳐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라고 하는 것처럼 애런의 인생의 순간들을 주마등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애런의 행동 하나하나에 음향과 카메라를 집중 시키며 디테일을 살린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관객은 애런의 자리로 완벽하게 몰입된다. 음향과 편집을 통해 영화가 단지 시각과 청각의 매체라는 것을 초월하며, 2D의 영상을 통해 3D와 4D를 넘어서는 공감각을 느끼게 한다. 신경줄을 자르는 장면에선 난생 처음으로 극장에서 고함을 지르게 되고, 오줌을 마시게 되는 애런의 모습을 보며 내가 구역질을 한다. 탈출에 성공한 애런이 똥물에 얼굴을 처박을 땐 내가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127시간>을 끝까지 보는 것은 하나의 고문이나 다름없다. 보일에 의해 우린 정말 애런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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